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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야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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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노우에 야스시는 1907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현 이즈시에서 성장한 일본의 소설가이다. 규슈 제국대학, 교토 제국대학에서 수학했으며, 마이니치 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주요 작품으로 『투우』, 『둔황』, 『풍림화산』 등이 있으며, 현대, 자전적 소설, 역사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했다. 1964년 일본 예술원 회원, 1976년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91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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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야스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55년의 이노우에 야스시
1955년
본명이노우에 야스시
출생1907년 5월 6일
출생지홋카이도 아사히카와
사망1991년 1월 29일 (향년 83세)
사망 장소도쿄도주오구쓰키지 (국립암연구센터)
묘지시즈오카현이즈시 구마노산 묘지
국적일본
직업소설가
학력
모교교토 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 (미학)
작품 활동
활동 기간1936년 - 1991년
장르소설
주요 작품투우 (1950년)
아스나로 이야기 (1954년)
빙벽 (1957년)
덴표의 용마루 (1957년)
돈황 (1959년)
풍도 (1963년)
오로시야국 취몽담 (1968년)
혼가쿠보 유문 (1981년)
공자 (1989년)
수상
주요 수상지바 가메오 상 (1936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 (1950년)
예술 선장 (1958년)
일본 예술원 상 (1959년)
분게이슌주 독자상 (1960년)
마이니치 예술상 (1960년)
노마 문예상 (1961년, 1989년)
요미우리 문학상 (1964년)
일본 문학 대상 (1969년, 1982년)
문화 훈장 (1976년)
기쿠치 간 상 (1980년)
아사히 상 (1985년)
증 정3위・훈1등 욱일대수장 (1991년, 몰후 추서)
가족 관계
배우자아다치 후미코 (1935년 결혼)
자녀이노우에 슈이치 (아들)

2. 생애

1935년(쇼와 10년), 교토 제국대학 교수였던 아다치 분타로(足立文太郞)의 딸 후미코와 결혼했다.[2] 같은 해, 『센터 마이니치(毎日)』에 투고한 소설이 입선되어 마이니치 신문(每日新聞) 오사카(大阪) 본사에 입사, 학예부(學藝部)에 배속되었다. 중일전쟁에 소집되어 입대했지만 이듬해 의병제대하고 복직했다. 부하 직원으로 야마사키 도요코(山崎豊子)가 있었다. 전쟁 후 학예부부부장을 맡아 바둑 혼인보전(本因坊戰)이나 장기 명인전(名人戰) 운영도 담당했다.[2]

1950년(쇼와 25년), 소설 『투우』(鬪牛)로 제22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9] 1951년(쇼와 26년) 마이니치 신문사를 그만두고 작품 창작, 집필, 취재, 강연을 위해 여행을 다녔다.[2] 1955년(쇼와 30년) 강연을 위해 고향 아사히카와시를 방문했고, 단편소설 「이사」(姨捨)를 발표했다.[2]

1964년(쇼와 39년), 일본예술원(日本藝術院) 회원이 되었다.[2] 1976년(쇼와 51년) 문화훈장을 받았다.[2] 1982년(쇼와 57년)부터 '세계평화어필7인위원회' 회원을 맡았다.[2] 1988년(쇼와 63년), 나라 실크로드 박람회 통합 프로듀서를 지냈다.[2]

1991년(헤세이 3년) 사망했다. 계명(戒名)은 봉운원문화법덕일정거사(峰雲院文華法德日靖居士). 묘소는 시즈오카현 이즈시에 있으며, 장례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집전했다.[2] 2007년(헤세이 19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소설 『풍림화산』(風林火山)이 NHK 대하드라마로 방송되었다.[2]

2. 1. 유년기 및 학창 시절

1907년(메이지 40년) 5월,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에서 군의관이었던 아버지 이노우에 하야오(井上隼雄)와 어머니 야에(八重)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노우에 집안은 시즈오카현 이즈시 지역 대대의 의원 집안이었다.[2]

1908년(메이지 41년), 아버지가 한국에 종군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고향인 시즈오카 현 이즈 유이가하라로 이주했다. 1912년(다이쇼 원년)에는 부모와 떨어져 호적상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2]

1921년(다이쇼 10년), 시즈오카 현립 하마마쓰 중학교(지금의 시즈오카현립 하마마쓰키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22년(다이쇼 11년), 시즈오카현립 누마즈 중학교(지금의 시즈오카현립 누마즈히가시 고등학교)로 전학했다.[2]

1930년(쇼와 5년),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제4고등학교 이과를 졸업하고, 본명과 글자만 다르고 발음이 같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泰)'라는 필명으로 호쿠리쿠 4현의 시인들이 만든 동인시집 『일본해시인』(日本海詩人)에 작품을 투고하며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2]

1932년(쇼와 7년), 규슈 제국대학을 중퇴하고, 교토 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2] 1936년(쇼와 11년) 교토 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9]

2. 2. 결혼과 기자 생활

이노우에는 1935년 마이니치 신문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1]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학예부에서 주로 미술 분야를 취재하며, 우에무라 쇼엔과 같은 일본 화가들과 교류했다.[16] 1937년 중일 전쟁에 징집되었으나 질병으로 귀향하여 다시 마이니치 신문에서 근무했다.[2]

2. 3. 작가 활동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은 크게 현대 배경, 자전적 색채, 역사 소재로 나뉜다. 대표적인 현대 배경 소설로는 「사냥총(猟銃)」, 「투우」, 「빙벽」 등이 있다. 자전적 소설로는 「아스나로 이야기」 등이 있으며, 이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 소설은 일본 센고쿠 시대를 다룬 「풍림화산」, 「사나다 군기」, 「요도 부인의 일기」 등과 중국 서역을 배경으로 한 「둔황」, 「로란」, 「덴표의 기와」 등이 있다.[5]

한국사와 관련해서는 몽골의 침략을 받은 고려 시대의 일본 원정을 배경으로 한 「풍도」가 있다.[9] 이노우에 야스시는 1963년 집필 당시 한국을 방문하여 강화도, 마산, 울산, 부산, 경주, 합천, 판문점 등을 답사했다. 「풍도」 출간 후, 이병도 박사는 "체계는 안 섰어도 사료 수집은 충분히 한 훌륭한 역사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1976년 6월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작품은 구성이 교묘하고 시정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역사 소설을 중심으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펜클럽 회장 시절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고, 연극, 영화, 드라마로도 각색되었다.

자전적 작품으로는 「시로방바」, 「여름 풀과 겨울 바다」, 「북쪽의 바다」가 있다. 이 작품들은 주인공 이가미 고사쿠(伊上洪作)의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를 그리며, 작가 주변의 실존 인물들이 모델로 등장한다. 특히 「시로방바」에 등장하는 꿰매는 할머니와의 생활은 이노우에 야스시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외에도 노년의 어머니에 대해 쓴 단편 3부작 「꽃 핀 나무 아래서」, 「달빛」, 「눈의 표면」이 있다.

이노우에는 1936년 교토 대학에서 폴 발레리에 대한 논문으로 미학 학위를 받았다.[3] 초기 작품 "류텐"으로 치바 가메오 상을 수상한 후, 마이니치 신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1][2][4] 1937년 중일 전쟁에 참전했지만, 질병으로 귀향하여 다시 마이니치 신문에서 근무했다.[2] 중국 북부에서의 군 복무는 그에게 중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1]

태평양 전쟁 이후, 1949년 단편 소설 "사냥총"과 "투우"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인정을 받았다.[9] 이후 현대 연애 소설,[3] 전후 일본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을 다룬 이야기,[3] 역사 소설,[5] 자전적 배경을 가진 작품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발표했다.[1][2]

1964년 일본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76년 문화훈장을 받았다.[2] 1991년 도쿄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

3. 작품 세계

이노우에 야스시는 현대 연애 소설, 검은 물결(Kuroi Ushio)처럼 전후 일본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을 다룬 이야기, 천평의 기와나 둔황(Tun-huang)처럼 정확하게 묘사된 배경을 가진 역사 소설, 나의 어머니의 연대기(Waga haha no ki)와 같이 자전적 배경을 가진 작품[1][2]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과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소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지식인의 고독한 영혼을 서정적으로 그린 현대를 무대로 한 작품, 자전적 색채가 강한 작품, 역사에 소재를 둔 역사 소설 작품이다.

3. 1. 작품 경향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은 크게 세 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엽총, 투우, 빙벽과 같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둘째, 아스나로 이야기처럼 자전적 색채가 강한 작품들이다. 셋째, 역사 소설로, 일본 센고쿠 시대를 다룬 풍림화산, 사나다 군기, 요도 부인의 일기와 중국 서역을 소재로 한 둔황, 로란, 덴표의 기와 등이 있다.

한국사와 관련해서는 몽골의 압제 하에 있던 고려의 일본 원정을 배경으로 한 풍도가 유명하다. 이노우에는 1963년 4월, 풍도 집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여 강화도, 마산, 울산, 부산, 경주, 합천, 판문점 등지를 답사했다. 이병도 박사는 풍도에 대해 "체계는 안 섰어도 사료 수집은 충분히 한 훌륭한 역사소설"이라고 평가했다.[1] 이노우에 야스시는 1976년 6월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작품은 교묘한 구성과 시정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역사 작품을 중심으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펜클럽 회장 시절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며, 연극, 영화, 드라마로도 각색되고 있다.

시로반바, 여름 풀과 겨울 바다, 북쪽의 바다는 이노우에 야스시 자신을 모델로 한 주인공 이가미 고사쿠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를 그린 자전적 작품이다. 시로반바는 이즈 유이가하라에서 보낸 유년 시절, 여름 풀과 겨울 바다는 누마즈 중학교 시절, 북쪽의 바다는 누마즈 중학교 졸업 후 재수생 시절을 그리고 있다. 특히 시로반바에 등장하는 증조부의 첩 '꿰매는 할머니'와의 생활은 이노우에 야스시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외에도 노년의 어머니 야에에 대해 쓴 꽃 핀 나무 아래서, 달빛, 눈의 표면 3부작이 있다.

3. 2. 한국 관련 작품 및 활동

몽골의 압제에 놓인 고려의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을 배경으로 한 「풍도」(風濤)가 한국사와 관련된 대표작이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1963년 4월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여 강화도, 마산, 울산, 부산, 경주, 합천, 판문점 등지를 답사하였다.[23] 출간된 「풍도」 단행본을 취재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에게 보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병도 박사는 "체계는 안 섰어도 사료 수집은 충분히 한 훌륭한 역사소설"이라고 평가하였다.[23] 이노우에 야스시는 1976년 6월에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였다.[23]

4. 수상 내역

수상 연도상 이름작품명
1936년지바 가메오 상유전
1950년아쿠타가와상투우
1958년예술선장 문부대신상덴표의 용마루
1959년일본예술원상빙벽
1960년마이니치 예술상돈황, 누란
1961년노마 문예상요도 도노의 일기
1964년요미우리 문학상풍도
1969년일본문학대상오로샤야쿠 스이무탄
1969년인환테 헨리케 훈장(해당 없음)
1976년문화훈장(해당 없음)
1976년문화공로자(해당 없음)
1980년기쿠치 간 상(해당 없음)
1981년NHK 방송문화상(해당 없음)
1981년불교문화상(해당 없음)
1982년일본문학대상혼가쿠보 유문
1985년아사히상(해당 없음)
1986년베이징 대학 명예 박사 학위(해당 없음)
1989년노마 문예상공자


5. 기타


  • 그는 홋카이도에서 태어났지만, 출신지는 시즈오카현이다. 수필 "고향 이즈"에서 "나는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서 태어났지만, 연감과 명부에서는 내 출생지를 시즈오카현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직접 쓸 때는 아사히카와를 출생지로, 시즈오카현을 고향으로 구분해서 쓴다..."라고 적었다. 자전적 소설 "나의 자기 형성사"에서는 "어린 시절을 보낸 이즈가 내 진정한 고향이었고, 나를 형성하는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라고 썼다.
  • 맏아들 이노우에 슈이치는 도쿄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히토츠바시 대학, 쓰쿠바 대학 교수를 거쳐 풀학원 대학 학장을 지냈다. 일본 독문학회나 독일어학문학진흥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세기말 빈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 말년에 신란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려고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다.
  • 일본 화가 히라야마 이쿠오와는 일·중 문화 교류로 친분이 있었고, 관련 직무를 잇기도 했다.
  • 신사나 불각, 일본사에도 조예가 깊어 여러 출판사의 관련 서적에 감수 및 편집을 맡았다.
  • 1972년 한국의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와의 대담에서 "문학의 사회 참가 문제"에 대한 질문에 "사회 속에 뛰어들어 사회 문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그것대로 좋겠지만, 사회의 한구석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나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통해 문학을 하는 사람도 많다"며 문학이 직접적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겠지만 반드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은 있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때 이노우에는 자신이 본 경주 석굴암과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칭찬하며 한국의 초가집에 대해 (당시 한국에서는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지역 곳곳에서 초가집을 없애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것을 마냥 가난의 상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고 자연과 풍토와 어울린 아름다운 것으로 남겨 두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비쳤다.[34]
  •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키히토 천황이 만찬회 석상에서 과거 한일 관계사에 관해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한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한다"는 담화문 내용은 이노우에 야스시가 마지막 퇴고를 거친 것으로 일본 정부가 확정지은 것이라고 《도쿄신문》 및 《일본경제신문》에서 보도하였다. 다만 해당 문구 자체가 이노우에 야스시 본인의 발안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34]
  • 문단의 술고래 랭킹에서 1, 2위를 다투었으며, 60, 70세가 넘어서도 주량이 늘기만 했다고 한다. 노벨상을 놓친 밤에는 "이건 노멜상이구려"라며 지인들을 대접하기도 했다.

참조

[1] 웹사이트 Inoue Yasushi https://www.britanni[...] 2021-07-19
[2] 웹사이트 井上靖 (Inoue Yasushi) https://kotobank.jp/[...] 2021-07-19
[3] 서적 Tun-huang New York Review Books
[4] 웹사이트 井上靖文学館 企画展 (Yasushi Inoue Literary Museum – Special exhibitions) http://inoue-yasushi[...] 2021-07-19
[5] 서적 The Counterfeiter and Other Stories Tuttle Publishing
[6] 뉴스 As a Life Is Erased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2022-01-16
[7] 서적 Japan Report https://books.google[...] Japan Information Service, Consulate General of Japan 2022-01-16
[8] 웹사이트 史上初の大調査 著名人100人が最後に頼った病院 あなたの病院選びは間違っていませんか https://gendai.media[...] 現代ビジネス 2011-08-17
[9] 간행물 京都帝国大学一覧 昭和11年度 https://dl.ndl.go.jp[...] 京都帝国大学
[10] 문서 井上靖文学碑を訪ねて https://www.nichinan[...]
[11] 서적 将棋金言集 時事通信社
[12] 서적 事典有名人の死亡診断 近代編 吉川弘文館
[13] 서적 作家の臨終・墓碑事典 東京堂出版
[14] 웹사이트 偕成社文庫100本ノック37『しろばんば』 http://www.kaiseisha[...] 偕成社 2015-02-03
[15] 문서 しろばんばの説明
[16] 서적 二人の美術記者 井上靖と司馬遼太郎 平凡社
[17] 뉴스 没後30年・井上靖を長女が語る「天命とは……ガン手術後、集中治療室で講義を始めた父」浦城幾世(故・井上靖氏長女) https://fujinkoron.j[...] 婦人公論 2021-01-29
[18] 뉴스 僕にはもったいない 顔紅潮の井上靖さん 朝日新聞 1976-10-26
[19] 서적 軽井沢という聖地 NTT出版
[20] 웹사이트 浦城いくよ|プロフィール|HMV&BOOKS online https://www.hmv.co.j[...] 株式会社ローソンエンタテインメント 2021-10-13
[21] 웹사이트 井上卓也|プロフィール|HMV&BOOKS online https://www.hmv.co.j[...] 株式会社ローソンエンタテインメント 2021-10-13
[22] 웹사이트 黒田佳子 おすすめランキング (4作品) - ブクログ https://booklog.jp/a[...] 2021-10-13
[23] 서적 グッドバイ、マイ・ゴッドファーザー 文藝春秋
[24] 뉴스 井上靖、ノーベル賞候補だった 川端康成受賞翌年の1969年 https://www.asahi.co[...] 朝日新聞 2020-01-21
[25] 웹사이트 安部公房は受賞寸前だった…ノーベル委員長語る http://www.yomiuri.c[...] 2012-03-23
[26] 웹사이트 朝日賞 1971-2000年度 https://www.asahi.co[...] 2022-09-02
[27] 웹사이트 井上靖『星と祭』復刊プロジェクト http://hoshitomatsur[...] 星と祭 復刊プロジェクト実行委員会 2019-06-29
[28] 서적 井上靖全集 第18巻 新潮社 1996-10
[29] 문서 三島由紀夫への弔詩
[30] 뉴스 「新青年」展(上) 井上靖の探偵小説 https://www.kanaloco[...] 2021-04-19
[31] 서적 井上靖全集 第1巻 新潮社 1995-04
[32] 서적 るるぶ滋賀びわ湖'15〰'16 JTBパブリッシング
[33] 웹사이트 文豪の世界への誘い 〜大作家の作品のドラマ化〜 -NHKアーカイブス https://www2.nhk.or.[...] NHK 2020-06-13
[34] 뉴스 井上靖 관련 기사 경향신문, 동아일보 199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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